일상 속 아트 문래동 숨은 그림 찾기
2015.04.03
철공단지에 핀 예술꽃을 만나다! 문래동 숨은 그림 찾기
문래동, 그 이름에 대한 몇 가지 추측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가? 같은 반 친구가 전학을 간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친하지 않다고도 할 수 없는 관계였다. 그래서 서운한지 서운하지 않은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어디로 가냐고 물었더니, 집이 문래동으로 이사를 했는데 집 근처에 있는 학교로 옮긴다고 했다. “물레동? 그런 곳도 있니?”하고 물었더니, 친구는 “물레동 말고 문래동!”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내 귀에는 그게 그거로 들렸다. 당시 나는 ‘영등포구 구로동’ 애경유지 공장 뒤편에 살았다. 옆 동네 이름도 몰랐던 시절이고 애경유지 근처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으니, 문래동은 참으로 까마득하고 먼 곳으로 느껴졌다. ‘물레’라는 발음 때문에 <잠자는 숲 속의 공주>에서 공주를 잠에 빠지게 한 물레가 떠올라 왠지 위험한 곳으로 생각되기도 했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이곳은 1930년대 방직공장이 들어서면서 일본인들이 ‘사옥동’이라 불렀다고 한다. 방직공 장이 있었다니, 문래동에서 물레를 떠올린 게 영 생뚱맞은 연상은 아닌 셈이다. 사옥동으로 불리던 문래동은 1952년 현재의 동명인 문래동으로 바뀌었다. 사옥동이 문래동으로 바뀐 데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우선 문익점이 목화를 이곳으로 가져와서 문래동이 되었다는 설. 두 번째는 학교와 관공서가 늘어나가 ‘글이 온다’는 의미에서 문래동이 되었을 거라는 추측. 세 번째로 방적 기계인 물레의 발음을 차용해 문래동이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동네 이름을 두 고 이렇게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는 경우도 없지 않을까. ‘설’이 많을수록 궁금증은 더 커지는 법. 속 시원히 누구한테 물어봤으면 좋겠다.
철공단지 문래동의 변화
판금, 밀링, 선반, 금형, 알론, 플라즈마 절단… 이중에서 아는 단어가 몇 개나 되는가. 일반인에게는 생소하겠지만, 문래동에서는 간판이나 현수막, 전봇대에 붙은 전단지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용어들이다. 1930년대 방직공장이 들어섰던 문래동은 많은 군소공장이 입주하면서 어느 틈에 철공단지가 되었다. 지하철 2호선 문래역에서 7번 출구로 나가면 드르릉 하는 쇠 깎는 소리가 먼저 방문자를 맞이하고, 용접할 때 사방에 튀는 불꽃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사실 이런 풍경이 내게는 낯설지 않다. 1970년대, 해외 진출로 경제를 살려보겠다며 정부가 중동으로 건설 노동자를 대거 파견했는데, 내 아버지도 그 중 하나였다. 아버지는 한두해에 한번씩 이란에서 쿠웨이트로, 쿠웨이트 에서 사우디아라비아로, 아우디아라비아에서 다시 이란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래서 나는 중학생이 될 때까지 아버 지 얼굴을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중동 붐이 사그라지자 아버지는 귀국해 기계밥을 먹고 살았다. 엄마는 기름때에 전 아버지 작업복을 다른 빨래와 섞이지 않게 세탁기에 따로 놓어 돌렸고, 강력 하이타이를 더 많이 넣었다. 하지만 그래 도 기름때는 잘 빠지지 않았다. 새 학기가 되어 가정환경 조사서를 쓸 때면 부모 직업란에 도대체 뭐라고 적어 넣어야 할지 남감했다. 교수, 의사, 미화원, 경비… 이런 직업은 얼마나 쉬운가. 누가 보더라도 무슨 일을 하는지 금세 알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아버지가 하는 일은 그렇게 규정해 놓은 ‘장르’가 없었다. “아빠가 하는 일이 뭐야?”, “응, 철구 조물이지”, “금속 가공업’이라는 말을 몰랐던 나는 그래서 직업란에 늘 ‘철구조물’이라고 적었다. 지금도 아리송 하다. ‘철구 조물’인지 아니면 ‘철 구조물’인지 말이다.
어쨌거나 문래동에는 ‘철구조물’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문래동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 예술가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고, 2010년 ‘문래예술공장’이 세워지면서 철공단지에 머물렀던 문래동이 예술적 향기를 입은 창작공간으로 거듭났다. 예술의 ‘예’자도 모르던 아버지가 지금 문래동을 걸으면 뭐라 하실지 궁금해진다. 하긴 아버지한테도 예술가적 기질이 살짝 엿보이긴했다. 이모네 집 대문이 너무 낡고 녹슬어 어느 날 이모가 아버지한테 대문 공사를 맡겼다. 그런데 아버지는 멋을 부린답시고 스테인리스로 울티 리형 대문을 만들어 달았다. 당시 보편화되어 있던 철판 대문을 원했던 이모는 내내 투덜거렸다.
갤러리인 듯 아닌 듯, 문래동의 전시공간들
예술 동네로서 문래동은 참 독특한 매력을 지녔다. 하나 먼저 귀띔하자면 문래동에서 눈에 확 띄는 ‘예술적 아우 라’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예컨대 문래동에는 갤러리가 여럿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갤러리 모습만 생각한 채 문래동에서 갤러리를 찾는다면, 결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이곳의 갤러리들은 대개 1960년대 풍의 낡은 건물에 입주해 있기 때문이다. 리모델링도 하지 않아 갤러리가 맞긴 맞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하지만 형식이 아니라 내용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문래동의 갤러리에서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문래동의 대표적인 전시 공간으로는 ‘예술공간 세이’, ‘오픈갤러리 AZIT’, ‘2조공간 두들’ 등이 있다. 예술공간 세이에서는 얼마 전 봄맞이 전시인 <즐거운 종달새야> 전이 끝났다. 예술공간 세이는 공모 및 심사를 통해 예술가를 선정하고 이들의 창작을 지원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오픈갤러리 AZIT는 스냅사진 출판사와 오픈갤러리를 함께 운영하는 곳으로 사진 위주의 전시회가 열린다. 2조 공간 두들은 회화작가 세명이 만든 전시공간으로, 다양한 기획 전시가 열린다. 문래동의 갤러리들은 어느곳이든 예술이 대중과 좀 더 가깝게 소통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문래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북카페 갤러리 ‘치포리’다. 치포리는 예비 사회적 기업인 비주얼디자인스튜 디오 안테나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2천여 권의 문화예술 관련 도서를 보유하고 있다. 이 책들은 대부분 기부 받은 도서인데, 말하자면 함께 만들어가는 커뮤니티 도서관인 셈이다. 무척 정감있는 공간이고, 또 문래동에서는 드물게 ‘럭셔리한(?)’ 분위기가 풍기기도 해서 차 한 잔 마시면서 작품을 감상하거나 혼자만의 시간 속으로 탐닉하면 졸을 것 같다. 샌드위치와 와플, 샐러드 같은 간단한 식사도 할 수 있다.
양자택일, 고즈넉한 산책이냐 굉음의 동행이냐
예술공간으로서 문래동의 랜드마크는 아무래도 ‘문래예술공장’일 것이다. 문래예술공장은 이름부터가 공장지대인 문래동의 특징과 잘 어우러진다. 예술이 뭐 별 거냐. 공장에서 만들어 내는 제품처럼 예술도 누군가에게 소비되고 향 유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예술로 도를 닦을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국내외 예술가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2010년 개관한 문래예술공장에서는 다양한 워크숍이 열린다. 4층 건물에는 공동 작업실과 세미나실, 녹음실, 박스 씨어터, 포켓 갤러리 등이 들어서 있다. 참, 옥상에서는 문래동 주변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특히 지하철이 지나가는 모습도 볼 수 있는데, 칙칙폭폭 달려가는 지하철을 보면 마음이 애틋해진다.
문래예술공장 내 기둥에 적혀 있는 글귀가 마음에 와 닿는다. 세상에서 가장 난래한 예술을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마음으로 전해주고 싶다는 그 말. 차가운 금속질감이 가득한 문래동에서 ‘따뜻함’은 더 간절하다. 문래동에 가기 전 한 가지 알아야 할 게 있다. 문래동에는 곳곳에 야외 조각품과 벽화가 있다. ‘너무 많아서 일일이 거론하기도 힘들 정도다. 야외 조각품은 망치, 용접 마스크 등 금속 가공을 테마로 한 작품들이 많은데 문래동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해 모두 금속으로 만들어졌다. 벽화는 테마와 스타일이 아주 다양하다. 특이한 점은 조각 작품과 벽화의 위치가 우리의 시선에서 벗어난 다는 것이다. 물론 골목길 답벼락에 그려진 벽화나 인도 한쪽에 놓인 조각은 어김없이 시선에 포착된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옥상 위, 건물 난간, 철공소 셔터 문, 간판 등 우리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도 작품이 즐비하다. 이건 한마디오 ‘숨은 그림 찾기’다. 친구와 함께 연인과 함께 문래동에서 숨은 그림 찾기를 해 보라. 꽤 재미있을 것이다.
일상 속 아트 문래동 숨은 그림 찾기
2015.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