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의 멋과 소리, 갤러리를 채우다 : 들리는 현대미술 보이는 클래식_ 블루&D장조
2014.08.26
일주&선화갤러리
들리는 현대미술 보이는 클래식
여름 무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전시가 서울의 한복판, 그것도 오피스 빌딩 안에서 열린다. 이미 미술계의 숨은 명소 로 알려진 종로구 신문로 흥국생명빌딩 3층 일주 . 선화갤러리에서 색다른 전시를 마련한 것이다. 이번에는 ‘블루’를 주제로 청색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 스무 명의 작품을 전시한다. <들리는 현대미술 보이는 클래식_ 블루&D장조>라는 이름으로 단순히 작품을 관람하는 전시를 벗어나 블루와 동일한 주파수 비율의 파동을 지닌 음계 D장조 클래식 8곡도 들을 수 있다. 더불어 예술영화 전용극장 씨네큐브에서는 블루를 소재로 한 영화가 8월 한 달 동안 매주 수요일에 상영된다. 이 여름 그림과 음악, 영화를 함께 즐기며 청량한 블루의 향연 속에 빠져보자.
(글 / 류동현 미술 칼럼니스트 사진/임학현, 조지영)
우리에게 단순히 ‘푸르다’는 의미로 와닿는 ‘블루’는 실상 꽤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푸른색을 통해 느껴지는 청명함, ‘블루스’라는 흑인 영가로 대표되는 우울함과 처연함, 프랑스 국기의 3색이 뜻하는 자유, 평등, 박애 중 자유까지, 서로 다른 얼굴을 감추고 있는 기묘한 단어다. 이렇게 다면적 의미를 가진 단어의 느낌 때문인지, 블루라 는 단어를 매개체로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만들어졌다. 대표적인 예는 바로 영화. 1990년대 새로운 사회상의 모습 을 반영한 이현승 감독의 <그대 안의 블루>나 프랑스 삼색기의 색을 통한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을 보여준 연작,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세 가지 색 블루>, 바다를 통해 도전과 우정을 드러낸 뤽 베송 감독의 <그랑블루>, 한 여성의 처연한 인생을 따라가는 우디 앨런의 <블루 재스민>, 어느 부부의 우울한 결혼생활을 차가운 색감으로 보여준 라이언 고슬링 주연의 <블루 발렌타인>까지, 제목에 붙인 ‘블루’라는 단어를 통해 영화적 색채감과 내용의 분위기를 우리에게 넌지시 띄운다.
미술에서 보면 어떨까? 젊은 시절 ‘청색 시대’ 작업을 통해 당시 우울한 정신세계를 드러냈던 파블로 피카소, ‘IKB’, 즉 ‘인터내셔널 클라인즈 블루’라고 스스로 이름 지을 정도로 청색의 모노크롬 화면을 창조해낸 이브클라인까지, 색을 전제로 한 미술 장르에서는 꼭 집어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례가 펼쳐져 있다. 그리고 이번에 또 하나의 ‘블루’가 예술계에 등장했다. 태광그룹 일주 . 선화갤러리에서 ‘블루’를 콘셉트로 <들리는 현대미술 보이는 클래식_블루 &D장조> 전시가 열리고 있다. 푸른색의 독점적 사용으로 이미 블루 회화를 의미하는 작가가 된 김춘수는 을 선보인다. 군청색을 뜻하는 울트라 마린의 깊은 화면은 ‘블루’가 가지는 처연한 심상을 표출한다. 최근 미국 구겐 하임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어 큰 주목을 끈 일본 모노하의 창시자 이우환은 <선으로부터>와 <청풍>을 통해 자신이 천착해온 정신의 미니멀리즘을 극대화한다. 김택상은 기억)>를 출품했다. 푸른색의 수많은 중첩을 통해 볼 수 없지 만 느낄 수 있는 비물질적인 블루를 관객들에게 제시한다.
7월 18일부터 9월 5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블루 톤을 중심으로 작업한 국내외 미술작가 20명의 작품을 한 자리에 모았다. 여기까지라면 일반적인 전시의 형식을 유지했다는 생각이 들기 쉽지만, 이 기획전시의 독특한 점은 바로 블루를 주제로 한 그림과 음악을 함께 접목했다는 데 있다. 블루와 동일한 주파수 비율 파동을 공유한다고 알려진 D음(레)을 주음계로 하는 D장조의 클래식 음악을 미술 작품과 함께 선보인다. 이른바 미술과음악이 결합된 공감각적 전시다. 사실 미술과 음악은 예술 장르의 2대 ‘대표 선수’지만, 시각과 청각, 이성과 감성, 지적 활동과 영감의 결과, 철학과 신학이라는 개념으로 양분되는 꽤 상이한 예술장르다. 그러나 화가 칸딘스키가 회화에 음악적 요소를 도입하기도 했고, 작곡가 드뷔시는 음악에 회화적 요소를 도입하는 등 미술과 음악의 결합에 공을 들인 역사는 꽤 오래됐다.
이번 전시는 미술과 음악의 단순한 조합에서 더 나 아가 색(色)과 음(音)의 관계를 ‘파동 에너지’라는 관 점에서 해석하고 미술과 음악을 접목한 점이 흥미롭 다. 시룰리언 블루(Cerulean Blue)와 어울리는 모차 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비발디의 <첼로 협주곡>을 비롯해 삭스 블루(Saxe Blue)와 어울리는 맨델스존 과 라흐마니노프의 곡, 코발트 블루(Cobalt Blue)에 어울리는 파가니니와 텔레만의 곡, 울트라마린(Ultra marine)에 어울리는 바흐와 브람스의 곡 등 총 8곡이 전시 기간 내 전시장에 울려 퍼진다. 그리고 스피커 제 작업체 쿠르베스피커의 협찬은 이러 한 음악적 경험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린다. 바야흐로 미술과 음악의 행복한 결합이다. 물론 단순히 여름과 바다색의 블루로만 이번 전시의 출품 작품을 가벼이 재단 할 수 없다. 참여 작가와 작품은 국내외 미술계 에서 매우 뜨겁기 때문이다.
강형구,김도균, 김봉태, 김택상, 김춘수, 김현식, 김환기, 남춘모, 문범, 박서보, 유봉상, 이기봉, 이우환, 이이남, 임채욱, 정상화, 하동철, 한기창, 로버트 인디애나, 이타미 준 등이 참여했다. 단색조로 강렬하면서 몽환적인 산수화를 표현해온 문범은 를 통해 우리 눈으로 보이는 영역과 이를 넘어선 영역의 경계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야기한다. 아크릴과 오일 스틱을 캔버스에 다른 속도와 강도로 문지르고 칠해서 만들어 지는 우연적 이미지는 마치 전통 수묵화를 보는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러브(Love)’ 글자로 다양한 색상과 크기의 조각 작품을 제작해온 미국 출신 팝아티스트 로버트 인디애나의 작품도 반갑다. 수많은 색상들로 제작된 중 푸른색과 붉은색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깔끔한 형상과 함께 여름의 시원함을 상기시킨다. 뉴욕현대미술관, 카네 기미술관 등 세계 곳곳의 공공장소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작품을 흥국생명빌딩 3층 일주 . 선화갤러리에서도 볼 수 있다. 전시실 안쪽을 둘러보면 동그란 눈으로 관객을 바라보고 있는 여성의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극사실 회화로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는 강형구 작가의 작품이다. 그는 오드리 햅번의 강렬한 눈빛을 푸른 색조로 잡아낸다. 극사실 적이지만 푸른색, 노란색, 붉은색 등 단색조로 채워진 그의 커다란 인물화는 클로즈업된 인물의 표정과 함께 더욱 강렬한 인상을 보여준다.
못의 작가로 알려진 유봉상은 프랑스에 20여 년간 체류하며 국제적인 감각을 소유하고 있는 작가다. 유봉상의는 풍경의 또 다른 해석이다. 금속의 평면에 못을 촘촘히 박아 못 머리를 그라인더로 깎아내고 못의 음영으로 표현한 풍경은 작가의 노동이 집약돼 몸과 감성의 진중함이 결합된 노작이다. 못이라는 오브제를 통해 푸른 자연을 담아낸 작업은 신선한 느낌을 준다.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추상미술 1세대로 주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김환기의 1966년 작 1966>과 1958년 작 <사슴>은 한국적 미감을 드러내는 단아한 푸른 빛 화면으로 서정성을 표현한다. 임채욱은을 통해 실제 풍경을 회화적인 느낌으로 풀어낸다. 흡사 동양화 같은 사진 작업이다. 안드레아스 구르스키나 칸디다 회퍼 등 독일 유형사진화파의 작업 분위기로 다양한 공간을 사진으로 포착하는 김도균은 을 출품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위해 지어진 경기장 벽면이 다양한 빛으로 변화할 때 푸른색의 변화가 작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게하르트 리히터를 연상시키는 몽환적인 풍경화 작업을 통해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통찰하는 이기봉은 이번 전시에 유일한 설치 작업을 선보인다. 의식의 상징인 책이 무의식의 깊은 심연을 상징하는 푸른 물 속에서 부유하는 <모든 것의 끝>을 출품했다. 한지라는 재료의 재질을 이용한 색다른 단색조의 평면 작업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사에 서 커다란 성과를 거둔 원로화가 박서보의 <묘법> 또한 이번 전시의 콘셉트와 잘 맞아떨어진다. 은 겹겹이 쌓아올린 한지와 그 사이에서 배어 나오는 짙푸른 푸른색을 통해 구도의 경지를 드러낸다. 한기창은 촬영한 뢴트겐 사진의 필름을 재가공한 색다른 회화, <뢴트겐의 정원>을 선보인다. 필름을 오리고 붙여 뒤에서 빛을 통해 보이는 그의 작품은 인체의 내부를 촬영한 필름의 아우라를 지닌 채 묘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그 외의 작가들도 자신만의 작업 속에 블루의 다양한 세계를 담았다.
전시와 함께 흥국생명빌딩 지하 2층에 있는 예술영화 전용극장 씨네큐브에서 8월 한 달간 매주 수요일 <그랑블루>와 <블루 재스민>을 상영한다. 이날은 평소 오후 6시 30분까지인 전시 오픈 시간을 영화 시작 시간에 맞춰 오후 8시 까지 연장한다. 블루를 주제로 한 다채로운 작품을 감상하고 클래식을 들으며, 뜨거운 여름날 시원한 블루의 세계에 풍덩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작가 인터뷰
오일 스틱으로
블루를 표현한 문범
전시 작품에 대해 소개해달라.
<slow, same, #5005>는 Ultramarine Blue에서 부여된 상 상력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 눈에 보이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부분들이 우리에게 주는 어떤 안타까움에 관한 것이다.
작품을 통해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언제나 그렇듯이 세상은 우리의 생각과 관계없이 제멋대로 흘러 가는 이상한, 그렇지만 상식적인 것이다. 완전하진 않겠지만, 현 대미술은 이것과의 애증관계를 집요하게 유지해야 한다. 나의 작업은 그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블루와 빛을 표현하는
김택상
자신의 작업에 대해 전반적인 설명을 부탁한다.
예술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나의 작업은 ‘말(언어)로는 다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그 무엇 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에게 블루란 어떤 의미인가?
淡(맑을 담), 보이지 않았지만 느낄 수 있었던.. 푸르렀던.. 그 바람에 대한 기억이랄까
작품을 통해 세상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설명해달라.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 색의 본질은 빛이요, 그 빛은 현상의 색이다.
청색 회화 대표 작가
김춘수
이번 전시 작품에 대해 소개해달라.
ULTRA-MARINE 1307>의 푸르고 깊은 화면은 슬픔에 가깝 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경우와는 달리 그것은 오히려 메이저의 에너지를 품으려 하는 것으로 보였으면 한다. 빛이 닿지 않는 심 해에서의 발광(發光)처럼 말이다.
일주선화갤러리 관람객에게 하고싶은 말은?
당신에게 있어 예술은 무엇인가?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하는 품목 중 하나인가? 힐링의 수간인가? 안락의자인가? 투자인 가? 혁명인가? 장식인가? 또는 그리움인가? 아니면, 의식의 변화를 일으키는 폭풍 또는 망치인가?
블루의 멋과 소리, 갤러리를 채우다 : 들리는 현대미술 보이는 클래식_ 블루&D장조
2014.08.26
일주&선화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