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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실제와 허구 사이 : 정연두와 니키 리의 ‘상상의 다큐멘터리

2014.02.10

일주&선화갤러리

한국현대미술연속기획전 3회 전시 연계 ㅡ 글

미술은 근본적으로 리얼리티를 다룬다. 거울처럼 반영하든, 왜곡하든, 아니면 이를 넘어 완전히 상상의 비전을 제시하든 어떤 방식으로든 리얼리티에 상관된다. 현실세계와 분리될 수 없는 미술에서 사진은 리얼리티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매체라 할 수 있다. 사진이란 매체는 20세기 후반부터 현대미술 안에서 이야기된다. 그 매체적 속성과 기술적 역량도 결국 작업의 컨셉과 미적 감성과 분리될 수 없고, 이리저리 시각언어를 확장하는 현대미술의 범주에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사진이다. 사진이 현대미술에 제시한 독보적인 기여는 ‘실제성’이란 점이다. 리얼리티를 실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속성(‘인덱스성’)은 다른 어떤 매체도 따라올 수 없는 사진의 정체성이다.

1970년대 이후 현대미술은 리얼리티를 미화시키거나, 조소하거나, 변형시키는 순수미술의 주관적 기능을 내려놓고, 리얼리티의 맨 얼굴을 보여주는 사진의 ‘쿨한’ 역량에 매료되었다. 바야흐로 ‘탈환영(disillusionment)’ 을 추구하는 포스트모던의 미학적 갈구에서 사진은 회화도, 조각도, 설치도 할 수 없는 독자성을 보여주었다. 기술의 발전에 민감한 사진은 2000년대에 들어 특히 현격한 변화를 보여, 실제성이라는 기존의 특성에 역행하는 ‘연출 사진’이라는 연극성(theatricality)을 도입했다. 따라서 요즈음의 사진에 대해 단순히 실제성을 논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더구나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놀라운 기술은 사진매체의 시각 언어를 가늠하기 힘들도록 다양하게 확장 시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제나 사진이란 매체는 인덱스성에 기반하여 실제를 다룬다는 명제 로 돌아온다. 아무리 연출사진과 디지털 언어를 활용한 가상 이미지가 성행한다고 해도, 리얼리티를 드러내는 사진 의 근본 속성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를 다루는 매체의 역량이 한층 풍부하고 매우 복잡해진 것이라 이해 하면 된다. 그래서 연출사진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던 2000년대 이후 사진매체의 표현능력이 기존 비평의 범주를 넘어섰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이론적 소임이란, 가상의 디지털 이미지와 합성을 활용하여 리얼 리티를 다루는 사진의 정교한 시각언어를 제대로 인식하고 규명하는 일이다.

정연두와 니키 리의 사진작업이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 주목을 끄는 이유는 이렇듯, 리얼리티를 다루는 매체의 표상 언어가 독창적(original)이기 때문이다, 미술작품이 그렇듯, 사진에서도 수사(修辭)가 전부인 것이다. 무척 다른 작업이지만, 두 작가의 주요 공통점은 예술적 상상력과 사회적 관계성을 기반으로 소위 ‘리얼리티’를 다룬다는 점이다. 필자는 이 점이 두 작가의 작업이 현대미술에 기여하는 가장 중요한 점이라 보는데, 이 점이 다른 비평가들과 차별된 지점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정연두와 니키 리의 미적 중요성은 가상과 현실 사이의 경계에서 미적으로 유희하면서, 관습적으로 그어진 양자 사이의 경계에 대한 도전과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이 작업들은 관람자로 하여금 이러한 경계가 완전히 다르게 설정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어쩌면 그 경계가 필요 없을 수 있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리얼리티는 어느새 완전히 달라져 있는지도 모른다. 정연두와 니키 리의 작업이 제시하는 리얼리티는 분명 고정되고, 정적이고, 주어진 상황이 아니라, 유동적이고, 변화가능하며, 만들어가는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일상적으로 가상 및 허구라 여기는 부분도 실은 넓은 의미의 리얼리티일 수 있다는 명제를 던지는 작업이다. 이들이 구상한 가상의 ‘실제’는 사진이 가진 인덱스성으로 말미암아 시각적으로 실현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실현되는 가상의 실제는 늘 사회에서 가져오는 것이고, 언제나 피사체(타자)와의 적극적 관계성에 기반하는 특징을 갖는다. 그러기에 최근 현대미술에서 중요하게 부상되는 화두, ‘관계적 수행(relative performing)’의 구체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고 본다.1) 이 사회적 관계성에서 정연두의 사진은 타자의 입장에, 니키 리는 자아에 중심을 둔다. 사회 속에서, 생활공간 안 에서 주어진 정체성이 과연 고정적일 수 있겠는가에 의문을 갖는 작업들이다. 이 흥 미로운 작업들은 오늘날 현대의 사회와 주체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사고하게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그러한 인식과 지각의 과정에 시각 매체가, 미술이 제시할 수 새롭고 확장된 가능성을 눈으로 확인한다.

 

1) 전영백, 「여행하는 작가 주체와 장소성 : 경계넘기 작업의 한국작가들을 위한 이론적 모색」, 『미술사학보』, 제 41집,
2013년 12월, p.182.

 

정연두의 ‘매개’로서의 사진매체

<보라매 댄스 홀>(2001), <상록 타워>(2001년), <내사랑 지니>(2004년), <원더랜드>(2004), <로케이션>연작 (2007년), 영상작업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2008년) 등 정연두의 일련의 사진 및 영상 작업들은 피사체 (타자)와의 신뢰적 관계를 바탕으로 한 연출 작업들이다. 인물의 꿈과 환상을 소재로 하여 사회에서 인식되는 정체성의 표상을 다룬다. 이는 작가가 대상과의 ‘관계적 수행’을 실천한 시각적 결과물인 셈이다.

작품의 시각적 장(site)인 사진의 표면의 가시계를 넘어 타자와의 관계성에 기반한 인물의 인터뷰, 꿈과 환상의 실현을 위한 실제적 마련, 환경적 마련을 위한 세팅 등의 퍼포먼스 부분 등의 비가시적 부분은 작업의 중요한 내용이다. 이러한 비가시적 퍼포먼스와 기술적 장치 등이 가시적 표면 이미지와 매듭 없이, 경계 없이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관람자가 지각한다는 점이 정연두 작업의 가장 흥미로운 점이다. 사진 앞에 선 관람자는 정연두의 작업이 보여주는 가시적 상상이 그 연출성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사진의 실제성을 확인한다.

 

사진의 ‘관계적 수행’

정연두 작업에서는 작가와 피사체간의 개인적인 관계는 필수이다. 그의 사진만큼 사진의 대상(인물)과 친밀한 관계를 전제로 한 작업은 아마 없을 것이다. 작가는 그가 찍는 인물과의 관계에서 매개자 내지 촉매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남의 꿈을 들어주는 일처럼 지겨운 일이 없을 것이다. 지대한 참을성이 필요하다. 하물며 그 비현실적 내러티브에 동감하고 구체적으로 시각화하는 일까지 하려면 웬만한 인내력을 갖고는 어림도 없다. 정연두의 사진은 사교적이고 친절하며 놀라운 인내력을 지닌 작업이다. 꿈을 단발적으로 실현하는 일은 어차피 불가능하다. 더구나 사진 한 컷에 담는 사진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이 사진작가가 ‘어설프게’ 실현시켜준 꿈의 사진 앞에 선 관람 자는 이미지 속 인물의 꿈에 쉽게 동화되어, “내가 만약 저 사진 속의 인물이라면?”하는 질문을 기꺼이 한다.

예컨대, 정연두의 대표작 <내사랑 지니>(2004년)나 <원더랜드>(2004)에서 실현된 꿈의 이미지는 그 허술하고 ‘꺼벙한’ 모습들이 감동적이다. 만약 이음새 없이 미끈하고 완벽한 방식으로 보여진 꿈이었다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을 움직이는 요인은 눈에 보이는 액면 그대로가 아니고 그 배후에 있는데, 이전에 실행된 작가의 ‘듣기’ 수행이다. 남의 꿈을 열심히 듣고 메모하는 작가의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정연두의 성실성과 기동력, 그리고 실천성이 전제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종종 엉뚱한 꿈을 진지하게 들어, 되든 안되든 이루어 주겠다는 태도가 작업에 스며있다. 그리고 그 표현방식이 의도적으로 서툰데, 그도 그럴 것이 작가가 실행하는 꿈의 실현이란 어차피 가상이기 때문이다. 세밀한 픽셀로, 고도의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보다 완벽한 이미지를 추구하려는 요즈음과 대조적이다. 그의 사진에서 보는 허술한 이미지는 진짜 꿈이 실현된 듯 행복해하는 인물의 순진한 미소를 담는다.
요컨대, 그의 작업은 사진의 최종이미지보다 사진작업을 두고 맺어진 친밀한 관계를, 작가와 인물 사이의 관계적 수행을 작업의 주요 내용으로 삼는 셈이다. 결국 실현될 수 없는 꿈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꿈을 꾼다”는 메시지는 애틋한 동감을 자아낸다. 동시에 꿈꾸는 소시민의 일상이 주는 감동은 꿈과 일상 사이의 간극에서 오는 것이라는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내사랑 지니>(2004년) 초상화 시리즈에서 정연두는 미래에 대한 꿈과 비전에 대하여 지역 청소년들을 인터뷰 하고 사진으로 연출하였다. 이는 한 인물의 두 초상화를 보여주는 슬라이드 설치작업으로, 하나의 초상화는 현재의 실재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인물이 꿈꾸는 자신의 모습이다. 이를 테면,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소녀는 가게 카운터 앞에서 자루걸레를 비스듬히 잡고 서 있다. 그 포즈는 그대로 남극의 얼음판 위에서 개썰매를 타고 사냥하기 위해 창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전환한다. 또한 주유소의 주유대 앞에서 급유 펌프를 가지고 서있는 소년은 F1 경주에서 우승하여 트로피를 손에 든 레이서의 모습으로 변화돼 있다. 그리고 고급 상점에서 빨간 코트를 입고 잠시 서있는 젊은 여성은 교외의 아늑한 집에서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모습으로 변신한다. 아시아의 대도시인 서울, 베이징, 도쿄에서 촬영된 초상화들에 이어 작가는 뉴욕, 이스탄불, 리버풀, 암스테르담 전시를 위해 제작된 작품들도 포함시켰는데, 그 작품들은 전시한 도시들과 그의 여행 중의 우연한 만남들에 의한 것이었다. 즉, 작가는 사진 매체를 적극 활용, 젊은이들에게서 들은 장래의 꿈을 시각화하여, 실현된 상태의 그들의 모습을 연출사진으로 만들었다. 여기서 이렇듯 꿈을 실현해 주고자 들어주는 그리고 완벽하게는 아닐지라도 유사하게 만들어주는 친밀한 관계는 앞서 언급했듯, ‘관계적 수행’의 구체적 사례라 말할 수 있다.

아이의 상상력과 청년기의 꿈을 다룬 〈원더랜드〉(2004) 또한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공동체 작업 이다. 이 연작은 어린이들의 드로잉을 가능한 가깝게 재현한 세트에서 포즈를 취한 청소년들을 찍은 것이 다. 그는 드로잉의 무한한 상상력을 재현하기 위해 많 은 사람들과 공동 작업을 했다. 4개월 동안 작가는 서 울의 4개 유치원의 미술수업을 관찰하고 5살에서 7살 사이의 어린이들이 그린 1200개의 드로잉을 모았다. 그것들 중 그는 17개의 드로잉을 선택해서 그 의미를 해석했다. 그리고 나서 작가는 어린이들의 드로잉을 바탕으로 한 시나리오를 연기할 학생을 모 집한다는 전단을 고등학교에 배포하여 60명의 고등학생을 모집하였다. 비대칭의 옷소매라든가 다른 크기의 단추들과 같은 드로잉의 디테일들을 섬세하게 재현하기 위해, 작가는 5명의 패션 디자이너에게 사진을 위한 옷 의 제작을 부탁한다. 그는 역시 실재의 크기가 아닌 드로잉에서 그려진 크기에 가깝게 세트를 만들었다. 〈원더랜드〉는 컴퓨터 그래픽에 도움없이 판타지 를 사진적 리얼리티로 변화시켰다. 완벽한 수작업인 그의 작품들은 무대제작과 비슷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의 결과물 이라 하겠다.

정연두의 대상은 연령과 계층을 망라한다. 〈보라매 댄스 홀〉(2001)에서 작가는 댄스홀의 단골이자 서울 근교 노동자들인 탱고 댄서들을 찍었다. 2) 패턴 있는 벽지처럼 부착, 설치된 사진 작품은 유머 넘치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과거 공군사관학교가 있었던 보라매공원은 그 통제와 검열의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현재 그 내부에 댄스교습소가 있다. 생활이 어려운 계층의 환경에서 서울로 상경했던 시골 사람들이 주로 거주하던 곳이다. 이렇듯 독특한 환경에 위치한 <보라매 댄스홀>은 그렇듯 한국의 대중문화와 더불어, 왈츠라는 서양의 신문화 및 자유로운 유흥 분위기 등이 이질적으로 교차하는 미묘한 지점을 이룬다. 다시 말해, 1960-70년대의 억압적 사회 분위기, 종종 탈선과 불륜에 연결된 사교댄스 그리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계층 등의 전혀 다른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연민과 향수가 유머 스럽게 포착되어 있다.

더불어 같은 해에 제작된 〈상록 타워〉는 서울의 전형적인 아파트에 살고 있는 중산층 34 가족의 거실을 찍은 시리즈 이다. 2명 혹은 3명의 자녀들을 가진 30, 40대 부부로 구성된 가족사진을 통해, 생활의 디테일을 발견해 내는 작가 의 섬세한 시선을 드러낸다. 이렇듯 2001년부터 시작된 정교하게 구성된 사진 시리즈에서 작가는 단순한 시각적 이미지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판타지를 형상화하면서 일상의 생활 아래 잠재한 삶의 소망을 표현한다. 이제까지 살펴본 <내사랑 지니>, <상록타워>, <원더랜드>, <보라매 댄스홀> 등은 공통적으로 평범한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제작한 작업들이다.

 

2) 보라매는 신대방동에 위치한 ‘보라매공원’을 의미한다. 그곳에는 ‘한국체육진흥회’가 운영하는 스포츠댄스 교습소가 있으며, 그것을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

 

가시계의 허구를 노출하는 리얼리즘

하지만 <로케이션>시리즈(2007년)는 위의 작업들과는 다르다. 야외 촬영지를 뜻하는 ‘로케이션’은 영화나 드라마 용어인데, 이 작업에서는 사람이 아닌 풍경과 배경이 전면에 부각된다. 얼핏 보기에 그의 사진들은 자연의 한 장면을 그럴듯하게 재현한다. 이음새 없는 세팅이 자연스런 환영을 유도하는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작가는 작업의 인공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처음에는 눈속임을 유도하는 연출의 묘를 발휘하나 결국엔 그 트릭을 그대로 노출시켜 모든 것이 연극임을 폭로한다. 예를 들어, <로케이션 #17>에는 바다의 모래사장은 천으로 모래를 연출하였고, 가을을 암시하는 <로케이션 #3>의 잎엔 노란색 물감을 칠해 은행잎을 모사했다.

또한 <비너스>를 모티브로 삼은 <로케이션 #18>은 르네상스 시대의 티치아노 회화에 대한 고찰이다. 르 네상스 시대의 회화에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붉은 천 및 인물과 원경을 함께 배치하는 방식을 그대로 따랐 다. 흐릿하게 배치한 원경과 붉은색 커튼, 그리고 석양 의 빛과 조명을 활용한 천의 구겨진 효과 등은 고전 회화에 대한 작가의 놀라운 관찰력과 묘사력을 발휘 한다. 한편, <로케이션 #19>은 뉴욕을 배경으로 삼아 인공 적 해변을 만든 장면이고, <로케이션 #12>은 옛날 영화에 빈번히 등장했던 드라이빙 장면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미장센이다. 이렇듯 정연두의 <로케이션> 시리즈는 ‘야외’ 촬영과 관련되며, 그 광경을 사진으로 재구성한 시뮬라크르의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진의 미장센과 달리 최근의 영상작업인 <다큐멘터 리 노스탤지어>(2008년)는 70여분 길이의 총 6개의 장면(scene)으로 이뤄진 작품이다. 첫 장면은 ‘방 안’ 이고, 두 번째는 ‘빈 도시의 거리’, 세 번째는 ‘농촌 풍경’, 네 번째는 ‘들판’, 다섯 번째는 ‘숲’, 여섯 번째는 ‘운해(雲海)’이다.

이렇듯 6개의 공간이 차례로 연출되는데, 카메라는 70분 동안 단절 없이 이 장면들을 촬영한다. 작가는 편집 없이 이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여러 기법을 도입하여 실재감을 높이는데, ‘진짜’처럼 보이는 PDP에 비춰진 야외 풍경들은 사실 실내에서 촬영한 ‘가짜’ 이미지 이다. 이러한 작업들은 ‘눈에 보이는 현실이 허구일 수 있다’는 역설을 놀라운 연출력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요컨대, 정연두의 작업은 우리 눈에 그럴 듯해 보이는 스펙터클이 미장센의 정교한 연출에 의해 훌륭히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제시한다. 유명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통합된 하나의 화면은 각각의 무대세트가 작위적으로 만들어 낸 환영일 뿐이다. 연속성과 통합성은 단절과 파편의 인위적 조작이라는 점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정연두 작업의 ‘탈환영(disillusionment)’은 미술이 가진 환영의 미학을 폭로하고 시,공간의 실재성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데, 여기에 작가 특유의 유머 감각이 가미돼 있다. 이 작업은 관람자가 영화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현실이라고 착각하게 만들기보다, 그 가시적인 현실의 ‘실재’를 폭로한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던 리얼리즘이라 말할 수 있겠다. 이렇듯 현실이 가진 실재성은 눈에 보이는 표면만으로는 알아채기 힘들다. 리얼 리티를 묘사하거나 벗어나는 작업이 아닌, 아예 “리얼리티를 만든다(making reality)”는 미적 전략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의도하는가? 눈에 보이는 외부세계에 대한 확실성을 상실한 지 오래다. 2000년대부터 부상한 연출사진은 실재에 대한 의구심을 품고 이를 처음부터 새로 조작해 보인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객관적 리얼리티를 보여준다고 믿어온 사진이 그 리얼리티를 조작하고 연출한다는 점은 분명히 역설적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렇게 연출된 리얼리티는 주체와 떨어져 존재하는 실재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인식으로 들어온 세계를 떠서 보여준다. 왜냐하면, 엄밀히 말해 이제 더 이상 주체와 분리된 객관적 세계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우리는 어느새 엄청난 인식의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이 같은 인식의 혁명을 눈앞에 펼쳐내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정연두의 작업을 포함한 최근 사진작업의 시각언어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듯하다. 요컨대, 오늘날의 사진은 실재의 객관적 세계를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식하고 지각한 리얼리티를 드러내준다. 주체와 객체 사이의 거리가 소멸된 상태에서, 사진의 인덱스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제 그 기능은 가시적으로 외부 대상에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 인식의 구조를 그대로 찍어 드러내기 시작 했다고나 할까. 오늘날의 연출사진들은 우리가 확고히 믿는 가시적 현실이 진정한 리얼리티가 아닐 수 있다고 말한 다. 눈에 보이는 현실세계가 허구일 수 있다는 점이 포스트모던 리얼리즘이 제시하는 겸허한 진실이다.

 

니키 리(Nikki S. Lee)의 퍼포먼스 사진작업

니키 리의 프로젝트는 대략 1997년에서 2003년 사이에 가장 활발했다고 본다. 90년대 말의 작업은 주로 특정 하위그룹의 일원으로 참가한 사진작업이 주종을 이룬다. 이를 열거하자면, 97년의 핑크 프로젝트(The Pink Project), 어린 일본인 프로젝트(Young Japanese), 98년의 레즈비언 프로젝트(The Lesbian Project), 히스 패닉 프로젝트(The Hispanic Project), 얍피 프로젝트(The Yuppie Project), 99년의 오하이오 프로젝트, 스윙거(The Swinger Project), 노인 프로젝트(The Seniors Project), 2000년의 댄서 프로젝트(The Exotic Dancers Project), 여고생 프로젝트(The Schoolgirls Project), 스케이트보더 프로젝트(The Skateboarders Project), 2001년의 힙합 프로젝트(The Hip Hop Project), 그리고 2003년의 파트(Part) 등이다. 니키 리(Nikki S. Lee)의 작업이 서구에서 주목받은 이유는 우선 그 매체의 특징에 있다. 퍼포먼스와 사진의 결합 방식은 분명 새로운 점에는 틀림없다. 그의 작품은 결과보다 그것이 나오기까지의 실제적인 과정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진이라는 표상보다 퍼포먼스의 진행에서 작가의 대담한 면모가 돋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때 표상 과 과정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 연결은 무척 부자연스럽다. 작가는 그런 인위적 연계를 의도적으로 노출시킨 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특정한 하위문화 그룹을 면밀히 관찰한 후, 그 집단에 직접 참여하여 지낸 후 그 전형적 모습을 그룹의 일원에게 사진으로 담게 한다. 과정은 놀랍도록 과감하고 결과는 어이없이 수동적이다. 작업의 독창성은 작가가 관습적으로 가져온 저자성(authorship)에 있지 않고, 작가의 연출력에 있다. 니키 리의 작업은 모사(mimicry)와 연극성에 기반한다. 마치 인류학자나 사회학자와 같은 그의 참여관찰식 작업은 분명 독보적이다. 그래서 그의 작업이 메트로 폴리탄이나 구겐하임 등 서구의 저명 미술관들에 소장돼 있는 것이다. 이러한 퍼포먼스 사진작업은 사회 집단의 문화적인 전형을 다룬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의 작업은 집단 정체성이 갖는 전형적 유형을 갖고 유희 한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주체가 가진 역할 플레이에 대한 고정관념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물론 이 고정적 인식의 틀은 그의 작업에서 사진매체를 통해 지극히 시각적으로 드러난다. 결국, 타인의 시각을 보이는 것이다. 퍼포먼스가 가진 연극적 특성은 니키 리의 작업이 가진 묘미이다. 그는 말한다.

“필연적으로 삶 자체는 공연이다. 겉모습을 바꾸기 위해 옷을 갈아입을 때 그 행위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의 심리적 상태를 겉으로 드러내는,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법의 변화이다.”

 

그래서 그는 힙합 댄서, 레즈비언, 히스패닉, 얍피, 10대 소녀, 할머니 등의 전형적 패션 코드를 인식하고 이를 제대로 소화해 낸다. 그러한 외모와 패션은 삶의 방식과 몸짓을 표상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여러 방식의 생활유형을 나타내는 아웃룩은 결국 정체성과 직결되기에, 니키 리의 작업은 언제나 정체성의 표상 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것으로 소개된다.

정체성의 전형적 시각적 표상은 피상성과 고정성을 갖는다. 어쩌면 이것이 미술의 한계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정체성을 표상하는 시각미술이 궁극적으로 다층성과 유동성을 나타내기 위해 어떤 미적 전략을 쓸 수 있는가가 작가의 역량이라 할 수 있다. 니키 리 작업에서 높이 사는 점은 자신의 정체성이 고정되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도전한다는 점이다. 작가는 나이, 성, 특정 취향과 생활관습에 머무르지 않고 늘 다른 역할과 모습, 행태로 바꿔나간다는 시각적 예시를 제시한다. 이를 통해 관람자는 리얼리티에서도 가능한 다양한 정체성과 유동적 역할관계를 어렴풋이 그려보는 것이다. 그러나 니키 리 작업의 내용뿐 아니라 그 작업이 가진 형식상의 매체적 속성이 미술이론에서 특히 주목할 지점이다. 이 부분에 대해 서구의 이론가들이 조명한 것은 십분 이해가 가는 일이고, 니키 리 작업의 현대 미술담론의 시의성을 보여준다.

예컨대, 필립 아우슬랜더(Philip Auslander)는 ‘실행된 사진(performed photography)’이라 명명한 범주에 니키 리 작업을 포함시켜 이 작가가 제시한 허구의 다큐멘터리를 서구의 주요담론에 편입시켰다. 아우슬랜더는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로즈 샐라비 (Rrose Selavy)에서 신디 셔먼(Cindy Sherman)의 다양하게 변장한 자화상 사진, 그리고 메튜 바니(Matthew Barney)의 크리마스터(Cremaster) 영상에 이르는 맥락에 그레고리 크루드슨(Gregory Crewdson)과 니키 리를 얹었다.3) 이러한 연극성이 기록된 사진 및 영상 작업은 흥미로운 새 영역이다. 즉, 도큐먼트의 공간은 퍼포 먼스가 벌어지는 유일한 공간이 되고, 관객이 보는 이미지는 사진 자체서만 일어나는 사건의 기록인 것이다. 사진 도큐먼트가 갖는 기록성과 퍼포먼스의 연극성은 반대적 속성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퍼포먼스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 도큐멘트 이전에 행위의 사건이 자율적으로 존재 해야 하는 것이고, 또 도큐멘트로 만들어진 작업의 기반인 행위는 퍼포먼스가 아니고, 이미지는 도큐멘트가 아닌 다른 종류의 작업인 것이다. 따라서 기록성과 연극 성은 서로 이율배반적인 것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니키 리를 포함한 위의 작가들의 예시에서 보는 두 매체의 연합은 새로운 형식언어를 제시한다. 이렇듯 퍼포먼스와 사진의 결합에 대해 아멜리아 죤스(Amelia Jones)는 “문화 영역 안에서 상징적 지위를 얻기 위하여” 퍼포먼스가 도큐멘 트에 의존한다고 묘사하였다. 4)

그러나 도큐멘터리와 퍼포먼스 도큐멘테이션의 연극적 방식의 두 가지 모두 카메라를 위해 마련된 점은 공통적이다. 카메라가 찍고 있다는 시선의 메커니즘은 동일하게 작용한다는 뜻이다. 다만 그 차이는 사고의 차이일 뿐, 즉 행위사건은 원초적으로 즉각적으로 현존하는 관객을 위해 마련된다는 것, 그리고 도큐멘테이션은 자체의 원초적 일관성을 갖는 사건의 부수적 기록일 뿐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기록성과 연극성에 대한 관습적인 사고의 차이는 니키 리의 작업과 같이 퍼포먼스와 도큐멘트의 연계가 밀접할 때 그 차이가 희미해진다. 그의 사진에서 보듯, 퍼포 먼스는 도큐멘트를 통해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퍼포먼스 사진’이라는 방식의 활용은 니키 리의 작업이 매체의 기능을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는 미술작업을 내용보다 매체의 활용에 주목하는 형식주의적 시각이라 할 수 있다.

 

니키 리 작업의 내용은 자신의 정체성의 전환이고, 이는 인종, 나이, 성별, 그리고 계층을 넘나든 것으로 이미 여러 곳에서 언급되었고, 여기에 반복한다면 클레쉐가 될 정도이다. 다만 그 정체성의 인식이란 차원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이 있다면, 그의 <얍피(Yuppie) 프로젝트, 1998년>이다. 이는 월 스트리트 증권가의 상류층 백인집단에 참여, 동화하며 찍은 사진작업이다. 이 작업은 백인성(whiteness)을 노출시킨다는 점에서 색다른 의미를 지니는데, 사회학자 루스 프랑켄버그(Ruth Frankenberg)가 예리하게 지적하였다.

 

그는 “백인들로 하여금 인종차별주의(racism)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첫 단계는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백인성(whiteness)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백인성에 대해 말하는 것은 모두(everyone)를
인종차별주의의 관계 속에 자리매김하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5)

 

권력자는 보이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 니키 리의 사진은 위계서열의 위층을 차지하는 백인의 인종성을 가시화한다. 그리고 이는 인식의 변화를 초래하는 바, 첫째 그것이 권력의 주변자들의 인종성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고, 둘째 백인성 또한 여러 인종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을 심어주는 것이다.

니키 리의 최근 작업은 이전의 작업과 다른 양상을 보이다. 예컨대 <레이어(Layers)>(2008년)에서는 ‘타자가 보는 자아’를 다룬다. 작가가 일관성 있게 다뤄 온 여러 문화의 관계성 안에서 다뤄진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전의 작업이 자신을 여러 모습으로 변화시키고 그 역할을 유동적으로 플레이했다면, 최근의 관심은 다른 문화에 비춰진 작가 정체성을 복수적으로 나타낸다고 하겠다. 나 자신을 변화시킨 것에서 타자가 보는 다양한 나를 표상한다고 말할 수 있다.

3) Philip Auslander, ‘The Performativity of Performance Documentation,’ A Journal of Performance and Art,
Vol. 28, No. 3, (Sep., 2006), p.2
4) Amelia Jones, “‘Presence’ in Absentia: Experiencing Performance as Documentation,”
Art Journal 56, 4(1997), p. 16.
5) Ruth Frankenberg, White Women, Race Matters : The Social Construction of Whiteness (Minneapolis :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3), p.6; Maurice Berger, ‘Picturing Whiteness : Nikki S. Lee’s Yuppie
Project’, in ‘Blinded by the White : Art and HIstory at the Limits of Whiteness’, Art Journal,
Vol. 60, No, 4 (Winter, 2001), p.55에서 재인용.

– JEON YEONG BAEK –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미술사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홍익대학교 미술사학과 석사,
영국 리즈 대학교(UNIV. OF LEEDS) 미술사학과 석사 및 박사.
영국 학술지 『JOURNAL OF VISUAL CULTURE』편집위원
현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 교수로 재직 중

저서로는 『세잔의 사과』(2008), 번역서로는 『후기 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2005), 『대중문화 속의 현대 미술』(2005), 『고갱이 타히티로 간 숨은 이유』(2001), 그리고 공역서로『욕망, 죽음 그리고 아름다움』(2005) 등

실제와 허구 사이 : 정연두와 니키 리의 ‘상상의 다큐멘터리

2014.02.10

일주&선화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