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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혼성모방의 오리지널, 진한 평면 배준성과/또는 김정욱의 회화에 대하여

2014.01.03

일주&선화갤러리

한국현대미술연속기획전 1회 전시 연계 ㅡ 글

한국 현대미술을 들여다보는 방법은 관점에 따라 다양하다. 그러나 우리가 ‘한국 현대미술’을 어떤 단일하고 일관된 전체로 전제하지 않고, 또한 그것을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관념으로 규정하지 않으려면 어떤 방법을 선택해야 할까? 나는 한국 현대미술에 나타난 다종다양하고 구체적인 현상의 단면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적합한 방법이라 생각 한다. 논자가 각 단면을 서술하고, 의미를 분석하고, 미학적으로 판단하는 과정을 거쳐 구조적인 차원에서 전체 맥락 을 조망한다면, 우리는 현재 진행형인 한국 현대미술에 대해 어느 정도 타당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같 은 일은 비평가 한 사람이 여러 작가나 작품, 사건이나 경향을 두루 고찰하는 것으로 이뤄질 수도 있고, 다양한 관점 의 논자들이 특정 대상을 각자 선택해 논하고 이를 종합함으로써 가능해질 수도 있다.

내가 애초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선화예술 문화재단이 “한국 현대미술의 본질과 정체성은 무엇인가”를 화두로 일정 범위의 작가를 선정해(구체적으로는 이 재단의 기획 측이 대표 작가로 선정한) 그 답을 찾으려 하는데, 그중 “배준성과 김정욱에 대한 평론을 맡아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이런 기획을 통해 지금 여기 미술가들의 예술이 더 풍부한 이론의 빛 속에서 조명 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은 일이라는 생각에 요청을 수락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는데, 이를테면 더하거나 덜 것도 없이 비평이 매개체가 되어 동시대 한국의 작가와 그/녀의 작품들이 의미화되고, 그렇게 해서 일정 수준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면모가 드러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본질과 정체성”에 대한 해답까지는 어렵더라도 말이다. 그러니 이 글은 애초 ‘배준성과/또는 김정욱이라는 작가의 미술’을 비평함으로써 한국 현대미술의 단면을 고찰한다는 방법론이 정해져 있다. 그럼 왜 배준성과/또는 김정욱 인가? 직접적인 이유는 이미 밝혔듯 기획 측이 배준성과 김정욱을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선정 했고, 그 둘을 묶어 전시를 열었기 때문이다.1)

 

1. 기획 주체가 어떤 관점에서 이 두 작가를 함께 엮었는지 나로서는 그 배경을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평론을 수락한 입장에서 비평가인 내가 작가 배준성과 김정욱의 미술에 동시에 접근하는 맥락으로 밝힐 수 있는 점은 다음과 같다.

즉 배준성과/또는 김정욱은 각자 서양화와 동양화 영역 ― 이 같은 구분이 다분히 형식적이고 관례적이라 하더라도 기획자의 입장에서 유효했다면―에서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 현재까지 소위 ‘한국의 젊은 작가들’로 불리는 세대의 미술을 일정 부분에서 표상하고 있기 때문에 함께 조명할 필요가 있다. 이하에서 보겠지만, 배준성과 김정욱은 한국 미술계가 젊은 작가의 ‘신세대 미술’에 본격적인 관심을 표방하고, 이론적 으로나 실천적으로나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의 미술을 적극화하던 시기에 큰 주목을 받으며 작가 활동을 시작 했다.2)

2. 그 말은 이 작가들의 작업에 그 두 가지 사항을 충족할만한 결정적 요소가 잠재돼 있었다는 뜻이다. 동시에 이 두 작가가 당시(그리고 현재도 어느 정도는) 그 같은 미술계 동향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중요 지표가 된다는 얘기다. 내가 본문에서 배준성과/또는 김정욱의 미술에 대해 논할 때 바탕으로 삼는 지점 또한 이에 결부돼 있다. 말하자면 이 두 작가가 어떤 시대적 감수성과 경향을 따르거나 선취했고, 그에 따라 지금과 같은 상태에 이르렀는지가 관건인 것이다.

1) 「황금 DNA : 한국 현대 미술 연속 기획전 첫 번째 이야기 김정욱/배준성 展」, 일주&선화갤러리, 2012. 10. 25~12. 30.
2) 배준성은 1996년 금호미술관에서 가진 첫 번째 개인전 「독후감」을 통해, 김정욱은 1998년 같은 미술관에서 연 첫 개인전을 계기로 한국 미술계의 주목할 신인 작가로 부상했다. 또한 배준성은 95년, 김정욱은 96년 ‘정경자 미술문화재단 신인작가 후원상’을 수상 했다.

 

배준성 : 혼성모방의 오리지널

배준성은 1990년대 중후반 한국의 학계 및 문화예술계에서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이 크게 유행하고, 예술가들이 또한 그런 담론의 연장선상에서 창작의 패러다임을 전환해가던 시기에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주목받는 작가로 부상했다. 그런데 이때는 일상생활 및 문화의 일반적 차원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여전히 낯선 것이 었으며, 한국의 학계나 문화예술계에서조차 관련 이론을 넘어 구체적인 현상으로 그 이즘이 구체화되기 전이었다. 예컨대 현재는 진부한 유행어가 된 ‘크로스오버’ ‘퓨전’ ‘하이브리드’ ‘키치’ 같은 용어가 이제 막 소수의 사람들 입에 회자되기 시작한 때였으며, 그런 용어를 써서 미술을, 음악을, 문화 현상들을 설명하는 사람들이 왠지 모르게 ‘전 위적으로’ 보이던 시기였다. 미술계를 예로 들면, 당시 서성록이나 이영철 같은 몇몇 비평가, 박이소 같은 작가를 통해 모더니즘 vs. 포스트모더니즘 논쟁 또는 후기구조주의 담론이 수입 번역되기는 했지만, 실제로 그 같은 문제 의식 및 경향성을 함유한 한국 작가의 작품을 찾기는 쉽지 않은 때였다. 요컨대 90년대 중후반 한국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은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 채 여기저기서 말로만 회자되는 무엇이었으며, 실증적 사례를 찾으려 해도 삶과 문화예술의 현장에서는 희박한 무엇이었다.

이런 시대적 배경은 배준성의 미술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왜냐하면 그는 바로 그 말로만 회자되는 무엇, 현상으로는 충분히 발견할 수 없던 무엇을 충족시켜 줄 작품을 들고 그즈음 한국 미술계에 혜성처럼 나타났고, 그 덕분에 한국 미술계와 작가 자신이 공히 특별한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포스트 모더니즘이 실체 없는 유령처럼 떠돌고 있을 때, 배준성은 <화가의 옷 (The Costume of Painter)> 회화 연작으로 한국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에 구체적 사례를 제공했던 것이다. 그리고 한국 미술계는 그 작가의 작품을 ‘포스트모던 아트’의 이름 아래 전시하고 비평하면서 배준성을 한국 신세대 미술의 간판스타로 만들었다.

요약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관점에서 20세기 중후반 서구 미학을 풍미한 포스트모더니즘을 몇 개의 주요 개념으로 압축하면, 그것은 모더니즘의 거대 서사(grand narrative), 주체성, 순수성, 독창성, 진정성, 상징성, 초월성을 의심하고 그에 반하는 파편, 타자, 혼성, 차용, 키치, 상호텍스트성, 패러디, 알레고리, 현세적 성향 등을 동시대 유의미한 가치이자 방법론으로 내세운 문화 예술적 추세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체를 정의한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는 “포스트모던적 예술가나 작가는 철학자와 동일한 상황에 처해 있다. 그들 의 텍스트와 작품은 근본적으로 기존 규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라고 단언했는데 3) 그의 말 그대로 포스트모던 문화 예술은 이미 “기존 규칙”이 된 모더니즘과 그에 저항하는(실제로는 반대하는) 요소를 대립시키면 대략 파악 가능한 태도와 형식을 지녔던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이를테면 후기구조주의 문학비평가로서 바르트(Roland Barthes)가 문학 영역에서 “저자”의 독점적 창작 행위 및 권위를 의심하고 “독자의 탄생”을 말한 상황에 미국의 포스트모던 미술가 레빈(Sherrie Levin)은 80년대 초반 모던 아트의 명작을 그대로 표절 / 전용 / 차용(appropriation) 하는 작품으로 부응했다. 또 구조주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가 서구 문화의 지배적 질서와 정통성 대신 인류 문화의 다양성과 혼성을 주장한 이후로, 일본의 미술가 모리무라(Yasumasa Morimura)는 80년대 후반부터 서구 회화의 이미지에 자신을 합성한 혼성 사진 연작을 국제 미술계에 내놓아 각광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미술계에서 위와 같은 담론과 미술이 짝을 이뤄 회자되고 향유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결정적 요인은 그에 부합하는 작가와 작품을 쉽게 발견할 수 없었던 데 있다. 반복되지만 배준성은 그런 상황에서 가장 포스트 모더니즘 경향에 부합하고, 그러한 미적 태도 및 형식이라고 평자들이 즐거이 독해할 만한 작품을 제시했다. 바야 흐로 한국 미술계의 논자들은 <화가의 옷> 시리즈를 통해 저자(미술가)와 독자(감상자), 오리지널과 모방, 순수성 과 혼성, 회화와 사진, 진정성과 키치, 순수미술과 대중문화 등 그간 차별을 전제한 이항대립의 요소들을 포스트 모더니즘 이론의 관점에서 전복적으로 비틀어볼 기회를 잡은 것이다. 그의 미술이 만들어진 구조적 과정을 분석하면 이 같은 점은 꽤 선명하게 드러난다.

<화가의 옷>은 배준성이 96년 첫 개인전부터 2013년 현재까지 작가가 선보인 일련의 작품을 묶는 상위 범주 명이다. 그 이름은 예컨대… 등등으로 변주되면서 배준성의 그림들을 몇 개의 집합들로 묶어내는 카테고리 이름인 것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이 작가가 얼마만큼 ‘화가의 옷’이라는 개념(또는 주제어)을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거기서 나아가 우리가 주목할 점은 작가 배준성이 ‘화가의 옷’이라는 용어를 통해 일관되게 스스로를 감상자 내지는 독자의 자리에 위치시킨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그가 말하는 ‘화가의 옷’에서 ‘화가’는 서구 명화를 그린 화가들이고, ‘옷’은 그 명화 속 여인들이 입고 있는 옷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배준성이라는 한국의 젊은 ―물론 이제는 더 이상 젊지 않은― 화가가 스스로를 서구 명화의 감상자 자리에 배치한 채로 주목한 ‘(거장) 화가’와 그 화가들이 그린 그림 속 모델의 ‘(재현된) 옷’이다. 그래서 성격을 명확히 하자면 그의 <화가의 옷> 시리즈 회화는 작가가 첫 개인전 제목으로 붙였던 이름 그대로 ‘창작’이 아닌 ‘독후감(≪독후감≫)’이고, 배준성은 ‘작가’가 아니라 ‘독자(관람자)’이며, 그가 그린 <화가의 옷>은 ‘재현의 재현’이다. 또는 그 같은 점을 작가 스스로 나서서 분명히 표방하는 포스트모던 미술작품, 즉 스스로가 오리지널이 아니라 이차 생산물(secondary) 임을 과시하고, 순수한 창작이 아니라 혼성모방임을 드러내는 경향의 미술에 속한다. 그래서 어느 평자는 배준성을 두고 “스스로가 화가이자 서양 고전 회화의 열성적인 관람자인 작가는 누구보다도 보는 즐거움에 민감 4)”하다고 말했던 것이다.

물론 이 같은 비평이 배준성 작품에 대한 어떤 부정적 가치 판단이 아니라, 그 미술의 속성에 대한 판단임을 새길 필요가 있다. 배준성의 회화는 애초 ‘오리지널’로 전제된 것들 ―서구 명화부터 세계 유수 미술관/박물관까지― 의 가치를 의심하고, 예술 창작 행위에 가정된 ‘순수 창작’ 개념을 의식적으로 위반하는 데 큰 목적을 두었기 때문이다. 앞서 잠깐 언급한 포스트모더니즘 작가 레빈은 1981년 나이젤 그린우드 갤러리에서 열린 ≪현대 미국 미술전≫에 독일 표현주의 화가 마르크(Franz Marc)의 <붉은 노루 Ⅱ>를 그대로 복제하고 다음과 같은 글귀 또한 포함시킨 작품을 출품했다. 이때 문장은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을 아는 이라면 아마 짐작하겠지만, 레빈이 바르트의 「저자의 죽음」에서 핵심 문장을 차용해 ‘텍스트’를 ‘회화’로 변조한 것이다.

 

“우리는 회화가 다양한 이미지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독창적이지 않은 이미지들이 뒤섞이고 충돌하는
하나의 공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 회화의 의미는 그것의 기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목적에 있다.” 5)

 

내가 여기서 레빈의 말(바르트의 텍스트 이론을 회화 이론으로 전용한)을 인용하는 것은, 배준성의 <화가의 옷>이 형식만 달랐지 레빈과 같은 예술적 의도 아래서 창작됐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즉 포스트모던 아트의 제스처이자 방법론이 그의 작업에서도 작동한 것이다. 물론 배준성은 레빈처럼 지적인 모양새를 취하지 않고 “작품의 맛있는 부분을 극대화하는 ‘꿀 바르기’가 먼저” 6) 라는 얼핏 들으면 속된 표현으로 자신이 서구 대가들의 회화를 의식적이고 노골적으로 차용하고 있음을 강조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기존 서구 회화사에서 창출된 작품들 중 “맛있는 부분”만 파편적으로 추리고, 그 맛있음을 극대화해서 다시 상차림을 한 ‘재생 식탁’ 같은 것이라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기존 회화의 맛을 극대화하기 위해 배준성이 사용하는 질료와 방법(작가 표현에 따르면 “꿀 바르기”)이 사실 그의 혼성모방적 회화를 단연 오리지널 한 것으로 만든다는 사실이다. 그가 96년 개인전에서 처음 선보였고 현재까지 꾸준히 채택해온 질료와 방법은 한국의 젊은 남녀를 누드모델로 써서 찍은 사진 ―찍는 단계에서 모델의 포즈가 이미 서구 명화의 개별 장면에 맞춰 결정된― 이 우선이다. 다음 그 사진 위에 비닐 그림 ―앵그르, 다비드, 코로, 베르메르, 반 다이크 등 시대와 유파에 상관없이 작가가 선택적으로 차용한 명화 속 여인들의 옷 부분만을 비닐 위에 모사한 그림― 을 겹쳐 하나의 작품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이후 비닐은 렌티큘러와 LED 판으로 확장되고, 사진 위에 비닐 그림을 오버랩하는 방식은 그림 위에 렌티큘러나 LED 판의 부착으로 변경되기도 한다. 또 화가의 옷에서 정물, 미술관으로 모티프의 범위가 넓어졌다. 하지만 우리가 보다시피 배준성의 작품에서 구조와 형식, 그리고 방법론 및 내러티브는 별다른 비약이나 도전 없이 이어지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단순하면서도 의미상으로는 내러티브가 복합적으로 엮이는 사진/광학적 이미지와 회화의 결합, 포르노그래피처럼 나체가 현상된 인화지와 ‘재현의 재현’을 통해 화가의 손맛이 표현의 아류로 가사화된 비닐의 겹침, 오리지널 이미지와 차용된 이미지의 노골적인 층위화를 통해 구축한 혼성모방의 오리지널. 요컨대 이것이 바로 배준성이 기존 회화의 관례로 따지면 이질적인 질료, 낯선 방법론을 도입해 그저 서구 명화의 “맛있는 부분”을 향유하는 관람자에 머물던 자신을 한국 포스트모던 회화의 오리지널 작가로 끌어올릴 수 있었던 기제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의 그림들을 ‘동시대적’이라고 말할 때 들 수 있는 비평적 요소다.

 

3) Jean-François Lyotard,“질문에 대한 답변 : 포스트모던이란 무엇인가”, 이현복 편역, 『지식인의 종언』, 문예출판사, 1993, p. 42.
4) 이지은, “배준성의 뮤지엄 시리즈”, 『Bae Joonsung: The Museum』 도록, 갤러리 현대, 2007, p. 8.
5) Michael Newman, “Revising Modernism, Representing Postmodernism: Critical Discourses of the Visual Arts”,
Lisa Appignanesi (ed.), Postmodernism: ICA Documents, pp. 95-163 중에서 재인용.
6) 배준성의 말이다. 이지은, “배준성의 뮤지엄 시리즈”, p. 8.

 

 

김정욱 : 진한 평면

김정욱이 한지에 먹으로 삐쩍 마른 몸에 두려움 또는 거부감에 가득 찬 얼굴을 한 인물 ―우리가 그 그림 속 인물들의 성별을 구별할 수 있는지, 그래봐야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을 그리던 1996년에서 98년, 한국 사회는 격변을 겪었다. 90년대 중반 몇 년간 과거 어느 때와도 비교할 수 없이 풍요롭던 한국경제가 흥청망청 거품이었음이 드러났으며, 사람들은 그간 소비사회의 넘치는 상품과 서비스로 안락함을 구가할 수 있었던 일상이 결국 자본주의의 탐욕적 부추김에 넋 놓고 휘둘린 결과임을 강제로 깨닫게 됐다. 96년과 98년 사이, 즉 97년을 경계로 불과 1년 사이에 안정은 불안정으로, 쾌락은 고통으로, 낙관적 전망은 현실 비관으로 롤러코스터를 탔다. 언제는 이 사회가 안 그랬냐고 반문한다면, 내 말은 그즈음 특히 그랬다는 얘기다. IMF 구제금융 사태가 터지기 직전이었고, 구제금융 체제에 접어 들어서서는 나라 전체가 경제 위기 및 구조조정으로 고통받았다. 그리고 그 여파로 한 번 풍비박산이 난 가정의 가족들이 그렇듯이, 한국 사회 구성원 거의 모두가 몰락의 공포, 일상화된 위기감, 결핍과 빈곤에 대한 트라우마로 부대꼈다. 그리고 여전히.

그 비슷한 시기에 김정욱은 텅 빈 백지에 오로지 인물만이 도드라진 그림, 예컨대 눈에서는 오줌 같은 노란 눈물이 흐르고, 얼굴 군데군데가 멍들었으며, 주인의 말을 잘 들을 것 같아 보이지 않는 뻣뻣한 사지를 가진 사람들을 그려 전시했다. 그 그림들을 감상자는 작가의 첫 회 개인전, 즉 98년 2월에서 3월 사이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전시에서 맞닥뜨렸는데, 거기서 관람자들이 느낀 것은 겨울 끝자락의 시린 공기만큼이나(아니면 구제금융 체제의 된서리 만큼이나) 차갑고 서글프고 힘든 감정이었다. 거의 검은 먹만을 사용해 한지에 그린 회화, 색채라고는 엷은 유자차 만큼이나 희미한 노란색이 아주 조금 보이는 그런 진한 어둠의 그림들 안에서 한 명 또는 두 명의 여자가(아마도) 영혼과 육체 모두를 갈취 당한 것 같은 모습으로 재현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은 단지 슬픔이나 외로움, 상실이나 심적 고통 같은 단어로는 규정하기 어려운, 단단히 뭉친 비애(悲哀)를 깊게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 비애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슬픔이라든가 초시대적 운명의 감정 같은 ‘진지한 의미를 띤 정서’가 전혀 아니었다. 그와는 달리, 생활 중 나와 당신이 겪게 되는 어떤 마찰과 갈등에서 오는 ‘쓰라림/아픔’, 혹은 자신의 감정에 스스로 파고들면서 갖게 되는 ‘센치함/연민’이 매우 짙어진 ‘동물적/본능적 상태’와 같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해 김정욱이 겨우 첫 개인전을 치른 신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평가를 받고 세간의 이목을 끌 수 있었던 요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즉 형이상학의 존재론이나 마르크스주의의 물질론 등 그 어느 쪽의 거대 담론도 귀히 여기지 않고 특별히 주목하지 않았던 구체적 개인의 즉물적 감정을 평평한 화면 위에서, 거의 흑(黑)과 백(白)만을 써서 말 없는 그림으로 토로/표현할 수 있는 저력. 이 같은 힘이 김정욱이 당시에 갖춘 자기 회화의 강점이라면, 마침 그런 점을 절실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감상자의 감수성 및 지각 상태는 20세기 말이라는 시대가, 한국 사회가, IMF로 벼랑 끝에 몰린 우리 각자가 김정욱에게 준 일종의 선물이었다(물론 역설적인 의미에서 말이다). 요컨대 김정욱의 98년 전시작들은 극히 지난(至難)한 삶과 즉물적 존재 상태로 떨어진 개인, 표현 불가한 성질의 사적 감정과 주관성에 초점을 맞춘 ―혹은 그렇게 감상자의 지각을 유도하는― 그림들이었고, 그렇게 인정 받을만한 것들이었다.

이 같은 독해는 좀 더 그 비평 범위를 확장할 수도 있는데, 당시 한국 사회의 현실적 상황을 넘어 시대적 패러다임 자체가 개인과 사적인 것, 감정과 주관적인 것에 집착하며 그에 대한 새로운 가치 평가를 시도해나가는 식으로 이행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미술에서는 모더니즘 미술의 형식주의 미학이 억압했던 묘사적 이미지와 모방적 기교, 감상적 이야기, 인간적 관심, 허구와 공상 등이 옹호됐으며, 문화적 의식면에서 또한 전체보다는 파편이, 대의와 이념보다는 개별 경험과 정서가, 추상적 깊이보다는 즉물적이고 직접적인 표현이 더 환영 받았다. 김정욱의 그림이 그런 배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구체화됐는지, 아니면 반대로 그런 성향을 선취하는 회화였기 때문에 그 같은 배경에서 두드러질 수 있었는지, 그 선후관계를 따지기는 어렵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화가의 진한 어둠이 배어 있는 그림들이 당시 시대적, 사회적, 그리고 심미적 속성 및 취향과 상호작용적 차원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98년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고, 감상자들에게 짙은 인상을 남긴 김정욱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곧이어 개인전을 열지 않고 시간을 보낸다. (물론 이 말이 작가가 활동을 전혀 안 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해만 해도 작가는 국립현대 미술관의 《젊은 모색》 전을 비롯해 굵직한 기획전에 참여했다.) 그녀의 두 번째 개인전과 새로운 작품들을 보기 위해서 우리는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는데, 2004년이 되어서야 김정욱은 이전과는 상당히 다른 새 그림들을 들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지에 먹으로 인물을 그린다는 큰 틀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시기 김정욱의 그림 속 인물은 경험적 현실의 면모를 상당 정도 탈각했으며, 98년 전시작들이 풍겼던 종류의 감정은 거의 희박해졌다. 인물의 현실성을 지탱시켰던 사물들(화분, 의자, 거울 등)은 완전히 사라졌고, 경직된 사지의 신체는 화면을 가득 채운 커다랗고 둥근 얼굴로 대치됐으며, 비애감의 단서가 됐던 섬세하고 깨질 것 같은 표정은 밀가루 반죽을 둥글넓적하게 밀어 만든 것 같은 무미건조하고 단조로운 얼굴 위에서 자취를 감췄다. 목 부분에서 과감히 잘린 (cropping) 인물화는 상대적으로 김정욱의 98년 경 그림들이 새삼 지나치게 묘사적이고 센티멘털했던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했다. 그만큼 2004년 갤러리 피쉬 개인전에 나온 작품들이 형식을 중시하고 감정을 억제한 회화 로 받아들여졌다는 뜻이다.

오히려 세부 묘사만을 따지면, 눈썹 한 올 한 올이, 피부에 난 뾰루지 하나하나가 끔찍하리만치 정교하게 그려졌음 에도 말이다. 또 그 인물들의 표정이 까맣게 칠해진 동공과 가늘고 미약하게 묘사된 입술 때문에 더욱 강렬하게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증명사진보다 더 사각형 화면을 꽉 채우게 그려진 그림 속의 여인들(아마도)은 현실로부터 배태됐지만 현실 그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부피와 디테일을 갖고 한지의 표면 위로 부상해 있었다. 실재와 비현실, 존재와 허구, 경험적 형태와 상상적 형상, 동형(同形)과 이형(異形) 사이의 피조물들처럼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가시적 변화가 작가의 어떤 구체적이고 명확한 뜻에 따라 빚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점은 김정욱의 회화세계가 보다 회화 내부로 집중해 들어왔다는 사실이다. 달리 말하면 그 전 그림들이 부지 불식간에 환기시켰던 시대적이고 사회적이며 현실 일상적인 배경이 떨어져나가고 그림을 그림이게 하는 요소들, 예컨대 평면성과 사각의 프레임 등이 그 자체로 부각되는 그림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동시에 그림이 환상성, 상상적 이미저리를 강하게 띠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현실적인 면모가 화면 위에서 사라지면서 작가의 상상력에 기반을 둔 이질적 존재(being)가 증강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미학과 그리 멀지 않다는 사실이다. 현실을 초월하거나 부정하는 대신 이종의 변칙적이며 그로테스크한 환상과 감각을 극대화함으로써 정형적인 것들의 사이, 질서의 틈, 존재와 비존재 의 간극, 강력한 시뮬라크르의 세계로 파고들기. 2004년 개인전 그림들은 바로 이 같은 존재의 기술(technique) 을 통해 거대서사에도, 피상적이고 파편적인 스토리에도, 리얼리티에도, 픽션에도, 어쨌든 그 어디에도 들지 않는 자신만의 인물상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구축하게 된 김정욱 회화세계의 출발점에 속한다.

이후 김정욱의 그림들은 2004년 작품 경향을 시작점 삼아 운동한다. 즉 일상 현실의 인물, 그 인물의 비애감 넘치는 얼굴이 아니라 과도(過度)현실이거나 저(低)현실의 어딘가에 존재할 것만 같은 인물과 무표정하면서도 정체가 모호한 감정에 가득 찬 얼굴을 표현하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점증했다. 그 과정에서 두드러진 점은 첫 개인전 그림들과 비교했을 때 인물에서 ‘인격’이라고 느낄만한 요소가 점차 완전히 소실되면서 그 자리를 ‘공상’ ‘비정형’ ‘외계적 속성’ ‘만화적 용모’ 등이 빽빽하게 점거하게 됐다는 점이다. 그것은 2006년경부터 2013년 최근까지 작품들을 훑어볼 때, 인형의 머리카락, 가면 같은 얼굴들, 순정만화의 소녀 눈, 마네킹의 몸체, 성녀(聖女)의 코스튬, 동화 일러스트레이션의 묘사법 등을 통해 나타나며, 그렇게 오직 시각적으로만 완성된다. 그래서 이제 ‘의미’라는 것은 김정욱 그림에서 읽어낼 요소가 아닌 것으로 보이며, 대신 감상자는 동물적이거나 즉물적인(아니면 이종의 감각이나 날 것 상태 지각으로) 능력을 발휘하여 뭔가 진한 이질성이 찐득찐득 고여 있는 평면 안으로 침투해 들어가야만 감상에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김정욱의 회화가 이제까지 살펴본 것처럼 변화했다는 점을 두고 그녀의 미술이 사회적 현실을 외면한다거나, 작가가 허구적 환상세계에 빠져 있다고 단정하는 것은 섣부를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피상적인 논리다. 왜냐하면 그러한 이행 또는 변화 자체를 현실에 대한, 그리고 회화 일반에 대한 작가의 대응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김정욱은 현실의 생활세계에서 고통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물들을 그리는 데서 공상적이고 이형이질적인 속성을 부착한 인물들을 그리는 데로 이행함으로써 의미나 정체, 가치나 기능과는 다른 층위의 미적 현상을 만들었다. 이 대목에서 일본의 오타쿠 문화를 포스트모더니즘과 결부시켜 논한 아즈마 히로키의 다음과 같은 분석을 2004년 이후 김정욱 그림을 이해하는 부가적 참조물로 사용할 수 있다.

 

“오타쿠들이 사회적 현실보다는 허구를 택하는 것은 양자를 구별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현실이
부여하는 가치규범과 허구가 부여하는 가치규범 중 어느 쪽이 그들의 인간관계에 유효한가 하는 (…)
그 유효성을 저울질한 결과이다. (…) 오타쿠들이 취미의 공동체에 갇히는 것은 그들이 사회성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인 가치규범이 잘 기능하지 않아 다른 가치규범을 만들 필요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7)

 

물론 김정욱의 최근 십년 작품들에서 일본 오타쿠 문화의 이미지를 보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내가 여기서 히로키의 논의를 덧붙인 것은 김정욱의 그림에 담긴 미적 취향과 각종 오타쿠들의 문화적 취향 간 유사성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표면적인 효과일 뿐이고,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양자의 취향 및 표현법이 사회 내에 위치한 자리와 기능이다. 오타쿠를 사회로부터 도피하는 한 존재 방식으로만 볼 수 없듯이, 김정욱이 자신의 그림들에서 사회 현실성을 탈각해나갔다고 해서 그것이 곧 현실 외면이거나 부정은 아니다. 그것들은 현실을 직접적으로 지시하거나 매개하지 않으면서 사회 속/이면에 상존하는 이질적이고 타자적인 면모들을 슬쩍슬쩍 비춰내는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한다. 김정욱의 그림에 집중해 말하자면, 우리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고, 원하지 않았으며, 만들지도 않은 시련, 고통, 슬픔, 비애, 박탈, 상실을 물화되고 탈 인격화된 사물과 이미지를 끝없이 평면적으로 쌓아올리면서(퍼내고 퍼내도 마르지 않는 화수분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그 반대 모델로서 쌓고 쌓아도 깊이가 안 생기는 평면은 모순이 아닐 것이다) 드러내 우리로 하여금 지각하게 하는 메커니즘으로 말이다. 작가가 쓴 다음과 같은 문구가 그런 메커니즘의 감각을 알듯 모를 듯 서술하고 있다. 시구(詩句) 같은 그 문장을 음미하며 이 글을 마치자.

“문득 찾아오는 적막은 귀하고 나를 몹시 처연하게 하는데 적막과 처연과 충만은 한곳에 있음을. 눈물겨운 나날들이 각각에 있고 그 모양새들을, 비밀들을 아름답다 찬미하지만 이내 발등에 떨어진, 떨어지려 하는 것엔 두려움이 지긋지긋하게 생생하다. 지긋지긋하며 아름다울 수 있을까.” 8)

7) 아즈마 히로키, 이은미 역, 『동물화하는 일본』, 문학동네, 2001, p. 59.
8) 김정욱의 작가 노트, 《진경 眞鏡》 전시도록, OCI 미술관, 2013, p. 54에서 인용.

 

– KANG SUMI –

미학, 미술비평, 동덕여대 교수

미학자, 미술비평가, 동덕여대 회화과 서양미술이론 교수.
한국일보 [삶과 문화]에 고정 칼럼을 연재 중이며, 미학 및 미술 저널에 글 발표.
홍익대 미술대학과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 동 대학원 미학과에서 발터 벤야민 미학에 관한 연구로 철학박사학위 받음.
저서로 『서울 생활의 발견』(기획 및 공저), 『서울 생활의 재발견』, 『모더니티와 기억의 정치』(공저), 『푸른 대양 · 청 춘의 개화-동시대 젊은 작가들의 미학』, 『한국 미술의 원더풀 리얼리티』, 『오늘의 미술가를 말하다』(공저), 『아 이스테시스-발터 벤야민과 사유하는 미학』 등이 있다. 저서 중 『서울 생활의 재발견』은 2003 문화관광부 추천 도서, 『아이스테시스-발터 벤야민과 사유하는 미학』은 2012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철학 분야에 선정.

[번역에 저항한다] 전시 기획으로 2005년 올해의 예술상(한국문화예술위원회) 수상
2007년 제3회 석남젊은이론가상을 수상

대표 논문으로 「인간학적 유물론과 예술의 생산과 수용: 발터 벤야민의 ‘초현실주의’를 중심으로」 「꿈과 각성의 시각적 무의식 공간: 프로이트 정신분석학과 함께 벤야민 후기 예술론 읽기」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위한 시각예술 이미지의 조직(Ⅰ) (Ⅱ)」 「인공보철의 미 : 현대미술에서 ‘테크노 스트레스’와 ‘테크노 쾌락’의 경향성」 등.

Pastiche Originals, Thick Surface:
On the Paintings of BAE Joonsung and/or KIM Jungwook
KANG Sumi (Aesthetics, Art Critic, Professor of Dongduk Women’s University)

혼성모방의 오리지널, 진한 평면 배준성과/또는 김정욱의 회화에 대하여

2014.01.03

일주&선화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