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걸으며 얻는 것
2015.03.12
영화 <와일드>와 미디어아티스트 빌 비올라의 작품 <조우>
道. 길과 도를 뜻하는 한자는 같습니다.
장자는 ‘길이란 다니면서 생긴 것이다’라 했습니다. ‘도란 행하면서 이뤄진다’라는 뜻이 담긴 말입니다.
인생도 길에 비유합니다. 길을 걷는 것과 진리인 도를 닦는 일 모두 인생인 것입니다.
신화 속 길가메쉬(우루크의 전설적인 왕)은 험한 산을 넘고 암흑을 헤치는 여정을 통해 자신의 이상을 향해 나아갔고, 제우스의 아들 헤라클레스는 여정 속에서 속죄도 하고 난제도 해결했습니다.
영화 <와일드>의 주인공 셰릴 스트레이드도, 영상 시인이라 불리는 미디어아티스트 빌 비올라의 작품 <조우 (The encounter)>와 <조상(Ancestors)>도 길을 걷습니다. 빌 비올라의 작품 <조우(The encounter)>는 붉은 옷을 입은 늙은 여인과 흰 옷을 입은 젊은 여인이 앞을 향해 대칭을 이루며 걷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지랑이가 이는 흙 바닥을 밟으며 두 여인은 관람객을 향해 다가오지도, 멀어지지도 않으며 하염없이 걷습니다. 한 참을 걷던 두 여인이 방향을 바꿔 교차합니다. 붉은 옷을 입은 늙은 여인이 젊은 여인에게 검은 주머니를 건네고 이내 둘은 다시 길을 걷습니다. 아지랑이 일렁이는 풍경과 걷고 있지만 속도가 느껴지지 않는 그녀들의 여정이 우리의 인생과 같아 보입니다. 마치 평행하게 속도를 맞추며 함께 가고 있는 이승과 저승 같기도 합니다. 죽음을 기점으로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이 서로 자리만 바꾼 채 이어지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로는 삶과 죽음의 길을 누군가와 함께 걷는 것 같습니다. 모자지간처럼 중년의 여인과 젊은 남자가 같이 걷는 작품 <조상(Ancestors)>처럼∙∙∙. 빌 비올라의 작품이 소리도 내러티브도 없이 단지 20여분 간 ‘걷고 있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삶 그 자체를 보여준 다면 영화 <와일드>는 걸으면서 끊임 없이 중얼거리는 주인공의 독백을 통해 삶의 과정을 곱씹어 보게 합니다.
<와일드>의 셰릴 스트레이드는 4,285km 트레일 코스를 홀로 걷고 또 걸은 여자입니다. 그녀에게 희망이자 삶의 지팡이같은 엄마는 가난과 폭력으로 행복하지 않은 결혼 생활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으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던 사람이였습니다. 그런 엄마가 일찍 세상을 뜨자 상실감과 후회에 무너진 셰릴은 마약, 섹스에 빠져들었습니다. 더는 내려갈 곳이 없다고 느낀 그녀가 마지막 힘을 모아 자신을 위해 한 것은 배낭을 꾸려서 길을 걷는 것이었습니다.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대략 서울과 부산을 다섯 번 왕복할 거리를 걸으며 그녀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도 후회도, 자신이 망가뜨린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도∙∙∙. 괴로운 기억과 생각, 인생의 역경을 길에 묻거나 외면하지 않고 걸어 내면서 하나하나 밟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3개월 간 후회와 미련, 절망의 길을 걸어 낸 이후에야 그녀는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침 출근, 회사 업무, 끝내야 할 과제 등 이것저것에 치이다 보면 인생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 마저 알아채지 못한 채 정신 없이 흘러가기 일수 입니다. 멀리 떠내려 가서야 여기에 왜 왔으며 어디로 가야 할 지 허둥거리게 됩니다.
‘늦었다고 할 때가 진짜 늦은 것이다.’ 요즘은 이렇게들 말한다고 합니다.
정말 너무 늦기 전에 지금, 길을 걸어봐야겠습니다.
길을 걸으며 얻는 것
2015.03.12